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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 윤수길 간사
📅 2020.10.29👁 조회 278춘천성시화운동본부



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 윤수길 간사
1970년-1972년 춘천CCC 대표간사 역임...신학 후 태국 선교사로 1980년 파송
김철영
‘성시화운동’은 한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강원도 춘천에서 CCC 전국 대학생들과 춘천지역 교회들이 연합으로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한국의 시군과 유럽, 미국, 호주, 일본, 과테말라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 윤수길 선교사 ©뉴스파워
춘천성시화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있다. 윤수길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CCC 간사로 첫발을 내딛었던 1970년 춘천CCC 대표간사로 부임해 1972년 말까지 사역을 했다.
CCC 간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의 전도자의 삶을 지향한다.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 아니고 간사(幹事)라는 이름으로 대학생선교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을 전하리”라는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민족복음화 요원 훈련의 홍보요원으로, 강사로 섬겼다.
윤수길 선교사와 한대희 선교사를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1층 북카페에서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일보 사장을 역임하신 조남진 장로님의 말씀에 의하면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하기까지 윤수길 선교사님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춘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뉴스파워
“1970년 춘천CCC 대표간사로 부임했어요. 그리고 김연호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춘천중앙교회(감리교단)에서 평신도신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가 한국교회를 통해 일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해 특강을 했습니다. 당시 강원일보 조남진 편집국장님이 그 강의를 청강했습니다. 며칠 후 강원일보사에서 둘이 만났습니다. 조 국장님이 당신의 신앙여정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조 국장님 집에서 춘천성경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성경공부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시 중학교 교감이었던 문선재 선생(나중에 목사가 되고 강원대 총장이 되었다.), 이학규 교감(초등학교 교장 역임)등 네 명이 모였습니다.”
윤 선교사는 당시 출석하고 있던 춘천제일교회 청년부 헌신예배 설교를 했다. 설교에 도전을 받은 대한생명 지점장 김형목 집사, 미군부대 캠페이지(camp page) 사령관의 통역 담당 박재헌 집사 등이 합류했다. 방송국 부장, 중앙정보부 과장, 춘천시청 공무원 등 20여명으로 늘었다. 춘천성경구락부는 조남진 국장과 문선재 교감 집을 돌아가면서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성경을 공부했다.
▲ 맨 앞 좌측이 춘천성시화운동본부 조남진 장로(좌)와 고 이학규 장로 ©뉴스 파워 자료사진
“저는 마무리 결론을 내려주는 역할을 했어요. 그분들이 스스로 큐티도 하고 성경 공부에 열심히 있었기 때문에 잘 하시도록 격려하고 기도해 드렸어요. 그리고 문선재 교감은 강원대로 옮겨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성경 공부를 한 내용을 소개했지요. 강원일보 안에도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대한생명 춘천지점에는 예배모임이 생겼습니다. 춘천시청 안에도 예배모임이 생겼습니다. 춘천 교계의 유명한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30대 초반의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윤수길 간사의 헌신으로 춘천의 직장들에서 조용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공부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CCC에서는 이러한 모임을 ‘순모임’이라고 한다. 민족복음화를 위한 최소한 전략단위 성경공부 모임을 지칭한다.
한국CCC 설립자이자 대표로 평생을 민족복음화와 성시화운동, 세계 복음화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신앙과 절대훈련, 절대헌신을 도전했던 김준곤 목사(1925-2009)가 주창했던 민족복음화를 위해 5만9천 자연부락마다 ‘순’과 ‘사랑방운동’을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실천한 것이다.
‘그 모임이 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가 되었군요‘
“김연호 목사님, 조남진 장로님, 문선재 교감 그리고 제 마음속에 춘천 복음화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1970년 12월 31일 0시 기독교방송(CBS)을 통해 김준곤 목사는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했다. 서울농대 수원캠퍼스에서 4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복음화 지도자 요원 강습회’가 진행됐다. 1971년 8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1만명 민족복음화 운동요원 강습회’가 진행됐다.
▲ 1971년 8월 2일부터 6일까지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1만명 민족복음화 운동요원 강습회 © 뉴스파워
서울 정동 CCC 본부에서는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 1만3천여 명이 민족복음화 전도훈련을 받았다. 윤 간사도 교사들을 동원하기 위해 CCC 간사와 학생(순장)들과 함께 뛰어다녔다. 강원도 내 강원도 초등학교(국민학교)와 분교까지 777개가 있었는데 그 중 600여 학교를 방문했다.
윤 간사는 당시 수많은 일화 중 춘천지구 김성주 총순장(학생 대표, 나중에 목사가 되었다)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김성주 총순장이 강원도 골짜기에 있는 학교까지 다니면서 홍보를 했어요. 한번은 높은 산에 있는 분교에 들러 부부교사에게 홍보를 했답니다. 허기진 채로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메주콩 냄새가 났답니다.그래서 따라 들어갔더니 할머니가 메주콩을 쓰고 계셨대요. 그래서 메주콩을 좀 달라고 해서 한바가지를 먹었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간첩으로 오인해서 지서에 신고를 해서 경찰들이 들이닥쳤답니다.”
▲ 윤수길 한대희 선교사 부부 ©뉴스파워
당시 서울지구 간사로 사역했던 한대희 선교사는 경북 청송지역을 돌면서 교사들에게 홍보와 동원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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